[인터뷰] 이재명 21대 대선 후보 “초등학교도 6km 걸어다녀… 못 갈 이유가 너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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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재명 21대 대선 후보 “초등학교도 6km 걸어다녀… 못 갈 이유가 너무 많았죠”
  • 김태훈 기자
  • 등록 2025-05-08 12:14:46
  • 수정 2025-05-08 15: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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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으로 간 열두 살 이재명
2021년에 월간 김어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구성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북 안동의 외딴 산골 마을 지통마에서 태어나 전기도, 도로도 닿지 않던 오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6km 거리 초등학교를 비와 눈을 헤치며 다녔고, 자연과 더불어 놀았던 기억이 삶의 원형처럼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척박한 환경과 경험은 훗날 이재명 정치의 토양이 되었다.


△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안동 지통마는 어떤 곳이었나요?
"제가 태어난 지통마는 정말 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 지금도 차가 못 들어가는 산꼭대기 마을이고, 계곡을 타고 구비구비 올라가야 겨우 닿는 곳이죠. 부모님과 조부모님 산소가 각각 봉화군, 안동군, 영양군에 걸쳐 있을 정도로 산경계 꼭지점에 있었고, 지금도 마을 전체에 여덟 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 그렇게 깊은 산골에서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고, 학교는 어떻게 다니셨나요?
"부모님은 원래 그 동네 토박이셨고, 작은 밭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삼계초등학교였는데, 그 학교까지 산길을 따라 6km를 걸어 내려가야 했죠. 진검다리가 잠기거나 눈이 많이 오면 못 가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좋으면 또 놀러 가야 하니까 못 가기도 하고요."


△ 초등학교 시절 결석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 일이 잦았나요?
"네, 실제로 제 출석부를 보면 결석이 많습니다. 그 시절에는 비가 많이 오면 학교에서 아예 오지 말라고 했고, 눈이 얼어 진검다리가 미끄러우면 건널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큰형이 먼저 가서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동생들을 돌려보내기도 했고요. 그런 날은 학교 못 가는 거죠."


△ 어릴 적 자연에서 어떤 추억을 쌓으셨나요? 기억나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저는 산에서 뛰놀며 자란 기억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진거미 잡아서 돌 위에 올려 놓고, 돌아올 때 익은 거 쪽 뽑아 먹고, 치커리 캐고, 산딸기 따고, 더덕도 구워 먹고… 복숭아 익을 때까지 서로 감시하다가 먼저 따 먹으려고 삶아 먹어보기도 했어요. 단풍잎도 너무 고와서 손에 꽉 쥐면 물이 떨어질 것 같았죠. 그 시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경북 안동의 오지 마을에서 자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가족과 함께 성남으로 올라와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학교를 갈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는 납땜, 고무공, 용접 시다 등 위험한 작업을 감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노동정책 철학에 깊은 뿌리가 되었다.


△ 성남으로 올라오게 된 계기와 시기는 언제였고,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1976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바로 그해 성남으로 이사 왔습니다. 형제들도 많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냈고요. 졸업하자마자 바로 공장에 취직해서 일했습니다."


△ 어린 나이에 학교 대신 공장을 다닌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형편이 정말 안 좋았어요. 칠남매였고, 어머니는 막걸리 뒤집어 얻어다 우리 먹이기도 했고, 아버지는 6개월짜리 월세 방 구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급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공장은 가도, 학교는 못 간다'는 게 당연한 일이었죠."


△ 목걸이 공장, 고무 공장, 프레스 공장 등에서 어떤 일들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상을 당하셨나요?
"납땜할 때 쓰는 염산에 손을 담갔다가 식힌 납덩이를 맨손으로 꺼내야 했고, 고무 공장에서는 새벽 2시까지 일하며 생라면 하나 주는 게 식사였습니다. 프레스 기계에 손이 눌려 성장판이 망가져 팔이 비틀어졌고, 그 때문에 장애 등급도 받았죠. 한 손을 들쳐메고도 일하러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와 공부 방식은 어땠나요?
"사춘기 무렵이었어요. 공장 가는 길에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여학생들이랑 마주쳤는데, 그때 '나는 뭐지?'라는 자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야간 학원을 다니다가 독학으로 돌렸고, 영어는 포기하고 나머지 과목만 공부해서 중졸 검정고시에 붙었습니다. 영어는 긴 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더라 해서 찍었는데 운 좋게 붙었죠."


△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은 사회적 부조리나 차별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공장 안에서 군기 잡는다고 줄 세워 놓고 빠따를 쳤고, 애들끼리 싸움 붙여서 진 놈은 갈굼당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예외 없었죠. 관리자들은 대부분 고졸자였고, 그걸 보고 '나도 고졸 자격증은 있어야 때리진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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