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할 생각 없었다”… 성남시장 출마, 시민운동이 밀어냈다
공공병원 좌절되던 날, 이재명의 정치가 시작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원래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남시 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첫 주민발의가 시의회에서 날치기로 부결되면서, “시민 뜻을 관철하려면 직접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2006년 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2010년 마침내 성남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 처음부터 정치를 할 생각은 없으셨다면서요?
"정치엔 관심 없었습니다. 제 역할은 지역 시민운동과 권력 감시, 노동자 지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의원들하고도 충돌을 많이 했지만, 언론 노출도 피했죠. 언론 나오면 본질이 휘어질까봐 일부러 숨었습니다."
△ 그런데 시장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성남시에서 공공병원을 만들자며 대한민국 첫 주민발의를 추진했는데, 6개월간 고생해서 만든 안건을 시의회가 단 47초 만에 날치기로 폐기해버렸어요. 정말 억울하고 분했죠. 그날 지하 기도실에서 밥 먹다 말고 울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이제는 우리가 직접 만들자'며 결심했죠."
△ 출마 과정은 어땠습니까?
"2006년 첫 도전은 낙선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떨어졌죠. 2008년 총선에서도 경선 탈락했고요. 세 번째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 성남시장에 취임하시자마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셨는데, 파격이었죠.
"인수위에서 보니 빚이 7,200억 원이었어요. 숨겨진 채무가 많았고, 토건비리도 만연했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강한 메시지가 필요했어요. ‘모라토리엄’은 사실상 재정 긴축 선언이었죠. 언론에서 ‘파산 선언’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감수했습니다."
△ 그 결정 이후 반응은 어땠나요?
"일주일은 칭찬받고, 두 달은 두들겨 맞았습니다. 기존 이권구조를 건드렸으니까요. 하지만 시민들께 솔직히 설명드리자 지지해주셨고, 그때부터 진짜 성남시 개혁이 시작됐습니다."
이재명표 정책의 뿌리, ‘냉장고 사과’와 ‘50만 원 청년 배당’
성남시장 시절 펼친 무상복지와 지역화폐, 모두 그의 삶에서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표 정책들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에 기초가 다져졌다. 청년 기본소득, 무상 산후조리원, 무상 교복, 지역화폐 등은 단순한 복지 확장이 아니라 그의 개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철학이다. 시장 재임 동안 그는 “정치는 선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다시 선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라는 확신을 실천했다.
△ 성남시장으로서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50만 원 청년 배당입니다. 중고등학교를 못 다닌 채 공장에서 일하던 10대 시절, 기회조차 없던 제가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있어 청년들이 최소한의 출발선을 갖게 해 주고 싶었어요."
△ 정책들이 대부분 복지 중심인데, 어디에서 출발한 생각들인가요?
"제가 겪은 가난에서 나왔어요.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시장 청소부셨고, 늘 썩기 직전 과일을 주워오셨어요. 어린이집에 과일 공급하는 사업은 그 기억에서 시작된 거예요."
△ 지역화폐 정책은 왜 도입하셨나요?
"처음엔 지역사랑상품권 수준이었지만, 지역 경제 선순환을 위해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혜택을, 소상공인들에게는 숨통을 틔워주는 정책이었죠.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철학이 반영된 정책입니다."
△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교복은 우리 집처럼 가난한 집에선 늘 부담이었어요. 돈으로 주는 게 아니라 지급 방식으로 했죠. 무상 산후조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출산이 고통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 그런 정책들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요?
"많았죠. ‘포퓰리즘이다’, ‘재정 낭비다’라는 비난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겪은 불평등과 박탈을 알기에 물러서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이해될 거라고 믿었습니다."